춘분
장승진(1974 - ) 전남 장흥
낮이 길어지고 있습니다
겨울 동안 방치됐던 묵정밭에서
잔돌멩이들이 눈을 뜹니다
볕 좋은 하루가 노릇노릇 익어갑니다
너무 익은 부분을 바람이 식혀줍니다
그 가운데 당신이 놓아둔 삽 한 자루
햇볕을 받아 눈부시게 빛납니다
돌아온 시력을 다시 끌어당깁니다
참새가 밭두둑에 앉아 목을 빼더니
무리를 찾아 떠나갑니다
바람이 참새를 힘껏 밀어줍니다
기억의 저편, 우두커니 선 나무에
초록 기운이 감도는 것 같습니다
잎이 자라는 대로
운명의 손금도 알 수 있겠지요
당신이 지펴 논 봄기운이
초록 불꽃으로 타올라 세상을 달굽니다
내 그림자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도
이 불꽃의 일렁임 때문이겠지요
이제 바람과 불꽃에
음습한 나를 말려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