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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여저를 도와주소서


마 15:21-28




 

   오늘 본문의 내용은 두로(Tyre)에서 있었던 일입니다예수님께서 두로에 오셨다는 소식을 입수한 한 어머니는 예수님께 와서 귀신 들린 딸을 고쳐달라고 간청했습니다예수님은 차갑게 외면하셨습니다. “나는 유대인 외에는 은혜를 베풀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그 어머니는 물러서지 않고 예수님께 절을 하면서 주여저를 도와주소서.”라고 했습니다예수님의 목소리는 더 차가워졌습니다. “자녀의 떡을 개들에게 주지 않는다.” 개 취급을 받았지만 그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주님맞습니다그런데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그 어머니의 믿음에 예수님께서 크게 감동하셨습니다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네 믿음이 크도다네 소원대로 되리라.’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참으로 놀라운 기적이었습니다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 담긴 몇 가지 궁금증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가셨던 두로(Tyre)와 시돈(Sidon)에 대해서입니다갈릴리에서 서북쪽 지중해 연한에 있던 항구 도시들이었습니다해상무역이 활발했던 곳이라 항상 여러 나라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쁜 도시였고 그래서 늘 시끄러운 도시였습니다영적으로 좋은 곳은 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 심판을 언급하실 때 그 두 도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눅 10:13-14)

 

   둘째는 가나안 여인헬라인 혹은 수로보니게 족속으로 표현된 이유입니다마태복음 15장에서는 가나안 여자라고 했습니다그런데 마가복음 7장에서는 헬라인이요수로보니게 족속이라고 했습니다상충(相衝)되는 단어들이 아니라 같은 뜻의 단어들입니다. 2,000년 전 유대 사회에서는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은 모두 헬라인이라 지칭했습니다즉 헬라인은 모든 이방인을 통칭하는 표현이었습니다지역적으로 보면 두로와 시돈은 가나안 땅에 있었고그곳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로보니게 족속 출신들이었습니다그러므로 세 단어를 합쳐서 설명하면 그 여인은 수로보니게 족속 출신으로서 가나안 지경인 두로에서 살았기 때문에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그녀는 헬라인이었던 것입니다마태복음을 기록했던 마태가 그 여인을 가나안 여자라고 기록했던 것은 마태복음의 수신자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유대인들에게 가나안 여인하면 설명이 필요 없는 이방인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런데 마가복음의 수신자는 로마인이었습니다그래서 로마 사람들에게 헬라인이라 말하면그 여인은 유대인이 아니었구나 라고 쉽게 이해를 했던 것입니다그래서 사도 바울은 선교 대상을 두 그룹으로 나눠서 표현했습니다자신의 동족인 유대인과 이방인을 가리키는 헬라인이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롬 1:16)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롬 2:9-10) 그처럼 신약 성서에서 언급된 헬라인은 그리스(Greece)’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이방인을 가리켰던 것입니다.

 

   셋째는 예수님이 두로에 숨은 이유입니다마가복음 7:24절은 예수님께서 두로로 가셨던 이유는 아무도 주님을 찾지 못하도록 숨기 위함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라고 하셨습니다예수님께서 잠시 몸을 숨기려고 하셨던 이유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못된 인간들 때문이었습니다마태복음 15:1절을 보면예수님께 시비를 걸기 위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작정을 하고 예루살렘으로부터 갈릴리로 몰려 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마 15:7) ‘위선자란 뜻이었습니다그들을 가리켜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셨습니다. (마 15:17-20) 그 격노의 말씀들을 남기시고갈릴리를 떠나 두로로 가셨던 것입니다.

 

   이런 이해를 가지고 오늘 본문을 보겠습니다오늘 본문의 주인공은 가나안 여인입니다그녀는 한 번도 예수님을 만난 적이 없었습니다그런데 어떻게 그런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그녀의 주변에 예수님을 만났던 믿음의 선배들이 많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누가복음 6:17절에는 두로와 시돈에서 온 제자들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과 함께 내려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많은 무리와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받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그 믿음의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예수님에 관한 [소문]은 그녀에게 [믿음]이 되었던 것입니다귀신 들린 딸을 데리고 이동하시는 예수님의 뒤를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그녀가 사는 두로에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은 감당할 수 없는 기쁨이었고희망이었고축복이었습니다그녀로는 그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천사와 밤새 씨름했던 것처럼 그때부터 예수님과 가나안 여인 사이에서 큰 씨름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예수님은 대꾸하지 않으셨습니다그녀는 더 큰 목소리로 애원했습니다제자들이 귀찮은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주님뭐라고 한 마디라도 해주세요아무 말씀도 안 하시니 저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귀찮아 죽겠습니다한 마디만하면 떨어질 것 같습니다한 말씀만 하셔서 보내버리시지요.” 그때 주님께서 그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의 땅에 와 있으나너희 이방인들을 위해서 온 것이 아니다.” “주여저를 도와주소서.” “자녀의 떡을 개에게 줄 수는 없다.” “주여옳습니다그러나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제자들은 한 말씀만 하면 떨어질 것이라고 했지만가나안 여인 더 적극적으로 붙였습니다굽히지 않았던 그녀의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켰습니다그래서 야곱이 그 씨름에서 승리했던 것처럼 그녀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덧입게 되었습니다. “여자여네 믿음이 크도다네 소원대로 되리라.” 그 말씀이 떨어질 때 그녀의 딸은 회복이 되었습니다그 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그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많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이 허락하시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나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 소중히 여겨주시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나도 예수님의 사랑을 입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습니다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을 훔친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마태복음 15장은 성난 파도가 일어났다가 잔잔해진 상황과 같았습니다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전통(傳統)이란 시비걸이를 만들어 큰 파도처럼 밀고 쳐들어왔습니다예수님은 몹시 격노하시며 그들의 시비를 끊어내 버리셨습니다그리고 두로(Tyre)로 잠시 피하셨는데그때 가나안 여인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번 긴 장마로 전남경남 지방에 큰 피해를 입었다는 뉴스를 보았습니다가옥과 농토들이 물에 잠기고다리가 끊어지고강둑이 무너지고가축들이 물에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많은 분들이 목숨을 걸고 구조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손을 내밀며 살려달라고 소리칠 때그 사람을 더 깊은 물속으로 떠밀어 집어넣는 사람이 설마 있을까요그런데 예수님은 가나안 여인을 그렇게 물속으로 던져 버리셨습니다. “나는 유대인만을 위해서 왔다나는 개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는 말씀은 물에 빠져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그녀를 더 깊은 물속으로 던져 버린 것과 같았습니다그러나 그녀는 거센 물살 속으로 사라지지 않았습니다물속에 집어넣으면 넣을수록 더 크게 튀어 올라왔습니다왜 그랬을까요? [엄마]라는 힘 때문이었을까요딸을 살려야겠다는 모성애(母性愛때문이었을까요아니었습니다그것은 믿음의 부력(浮力)이었습니다노아의 믿음의 방주가 큰 부력(浮力)으로 물 위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듯이 그녀의 믿음의 부력이 만들어낸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을 무시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사마리아 국경을 넘어 들어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수를 주셨던 분도 예수님이셨습니다로마 백부장의 믿음에 크게 감동하셔서 그의 부하를 고쳐주셨던 분도 예수님이셨습니다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사마리아인을 유대인 레위인과 제사장 보다 귀하게 표현해 주셨던 분도열 명의 한센병자들 가운데 오직 한 사마리아인에게만 구원을 허락해 주셨던 분도 예수님이셨습니다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가나안 여인에게 그처럼 심한 말씀을 하셨던 것은 [상처]를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그녀의 믿음을 [시험]하셨던 것으로 봐야 합니다.

 

   개 취급을 당해도 더 간절히 외쳤던 그녀의 목소리가 귀에 쟁쟁히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주여저를 도와주소서.” 지금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서 긴 시험대 위에 있습니다. “차차 나아지겠지치료제와 백신이 곧 나온다고 하니 곧 옛날처럼 되겠지.”라고 할 때가 아닙니다주님께서 가나안 여인에게 하셨던 것처럼우리를 지금의 형편보다 더 심각한 지경 안으로 떨어트린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정부가 아닙니다우리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코로나 치료제와 백신이 완료되었다는 희소식이 아닙니다코로나 보다 더 무서운 것이 다시 올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뿐입니다필리핀은 코로나 상황이 날마다 심각해지고 있습니다그래서 날마다 필리핀 성도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이 큰 시련의 파도에서 성도들이 구원의 줄믿음의 줄을 놓지 않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지금의 상황에서 더 나쁜 상황으로 떨어져도 가나안 여인처럼 기도의 줄예배의 줄을 더 단단히 붙잡고 튀어 오르도록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그 어떤 시련의 파도 속에도 쓸려 내려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습니다히브리서 2:1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 함이 마땅하니라.” 이 말씀가운데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이란 말씀이 큰 은혜로 다가옵니다코로나가 아니라 그 이상의 것이 우리를 무섭게 덮친다 할지라도 결코 말씀에서 떨어져믿음에서 떨어져세상으로 흘러 떠내려가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믿음이 이길 것입니다우리가 끝까지 믿음의 줄을 붙잡고 외쳐야 할 말은 이것뿐입니다. “주여저를 도와주소서.” 우리가 그 다음으로 할 일은 기다리는 것뿐입니다주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요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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