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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갑 선교사 - 10월 23일 은혜의 말씀
손 끝에 닿는 새벽 만나
출 16:1-36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의 인구는 20세 이상 남자만 603,550명이었습니다. (민 2:32) 어린이와 청소년과 여자들을 합하면 족히 200만 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애굽 고센(Goshen)을 출발해서 지중해 해안도로를 이용해서 가나안으로 갔다면 10일이면 충분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만약을 대비해서 2개월분의 식량을 준비해서 떠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생각했던 그 해안도로가 아니라 시내(Sinai)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두 달이 지나면서 비상식량까지 바닥을 보이자 그들은 모세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애굽을 떠난 지 2개월 하고 15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출 16:1)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출 16:3)라고 했습니다. 민 11:5절에서는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을 먹은 것이 생각난다.”고 했습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하는 식탐(食貪)이 그들을 미치게 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늘에서 양식을 비처럼 내려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하늘의 양식, 만나(Manna)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만나는 새벽에 이슬처럼 내렸습니다. 해가 뜨면 만나는 지면에서 녹아서 사라졌습니다. (출 16:21) 만나의 모양은 작고, 둥글고, 희고, 진주와 같았습니다. (출 16:14, 31, 민 11:7) 그 맛은 꿀을 섞은 과자처럼 달콤했습니다. (출 16:31) 만나는 갈기도 하고, 절구에 찧기도 하고, 불에 굽기도 하고, 가마솥에 삼기도 했습니다. (출 16:23, 민 11:8)
하나님은 그 만나를 거둘 때 필요한 주의 사항을 주셨습니다. 첫째, 먹을 만큼만 거두라. (출 16:16) 둘째, 한 사람 당 한 오멜(2리터)씩만 거두라. (출 16:18) 셋째, 다음 날 아침까지 남겨두지 말라. (출 16:20) 넷째, 안식일을 위해서 전날 금요일에는 두 배로 거두라. (출 16:5) 그 말씀대로 거두면 많이 거둔 사람도 남음이 없었고, 적게 거둔 사람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출 16:18)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더 많이 거둬서 감춘 만나는 고약한 냄새가 났고, 벌레까지 생겨서 먹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출 16:20)
여러 자료를 보면 만나는 지금의 무엇과 비슷하다 혹은 어떤 식물의 열매와 같다는 설명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나는 만나입니다. 만나를 이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식물에서 찾으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만나’의 뜻은 “이것이 무엇이냐?”(출 16:15)였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도 처음 보는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도 만나를 설명할 때 “깟씨(coriander seed) 같고, 꿀 섞은 과자 같은 것”이라고 “비슷하다”는 표현으로 기록했던 것입니다. 성지순례를 간 사람들은 성지 가이드가 광야에서 찾은 한 식물을 가리키면서 “이것이 바로 만나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흥분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왜 아닌지 보겠습니다. 첫째, 광야에도 계절이 있습니다. 깟씨가 하얀 꽃을 피울 때는 7월에서 9월까지입니다. 만나는 1년 365일 동안 매일 내렸습니다. 그래서 깟씨는 만나가 아닙니다. 둘째, 설령 광야에 ‘만나’라는 식물이 있다 할지라도 200만 명이 40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을 내지는 못했습니다. 애굽을 출발했을 때 인구는 20세 남자만 603,550명이었다고 했습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는 601,730명이었습니다. 40년 동안 1,820명만 감수했습니다. 그처럼 40년 동안 200만 명을 지속적으로 유지했었고, 그 200만 명이 40년 동안 매일 먹을 수 있는 식량을 광야에 있는 그 어떤 식물도 제공해 줄 수 없었습니다. 셋째, 만나는 이슬이 마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자연산 먹거리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식물의 열매를 주시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하늘에서 비같이 내려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새벽에 들판에 맺히는 이슬은 액체입니다. 그러나 만나는 액체가 아니라 절구에 찧기도 하고, 불에 굽기도 하고, 가마솥에 삼기도 했습니다. 넷째, 하나님은 만나를 언약궤 안에 넣어서 대대로 간수하라고 하셨습니다. (출 16:33) 광야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일반적인 식물이었다면 굳이 언약궤에 넣어서 대대로 간수하라고 말씀하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다섯째, 여호수아가 가나안으로 들어가 그 땅에서 나는 소산물을 먹었을 때, 그 다음 날부터 만나(Manna)는 더 이상 내리지 않았습니다. 여호수아 5:12절입니다.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그 말씀은 만나는 인류 역사상 오직 광야 40년 동안만 하늘에서 내린 [하늘의 양식]이었다는 뜻입니다. 40년 동안 지속되었던 하나님의 공급하심은 그 자체가 날마다 기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만나 안에 두 가지 의미를 담으셨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출 16:4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하셨습니다. 둘째는 이스라엘 백성을 낮추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신명기 8:3과 16절입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진노케 했습니다. 먹을 만큼만 거두라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욕심을 내어 더 거두므로 그들의 만나는 썩고 말았습니다. 안식일에는 나가지 말라 했지만 그들은 나갔습니다. 만나를 더 먹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내일이 불안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배고픔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했던 믿음의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너희가 언제까지 내 명령과 지시에 순종하지 않을 작정이냐?”(출 16:28)
정리합니다. 광야 40년 동안 내렸던 만나는 언약궤 안에 보존된 만나 외에 그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른 만나 즉 [참] 만나를 다시 내려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 6:32-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요 6:48-50절입니다.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광야의 만나보다 더 놀라운 만나가 하늘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셨던 것입니다. 그 만나를 먹지 않으면 죽는다고 하셨습니다. 참 만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먹지 않으면 그 안에 생명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만나를 당신의 살과 피로 말씀하셨습니다. 요 6:53-58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의 양식이었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요1:14) 그러므로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양식 ‘만나’로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시 한번 시내(Sinai) 광야로 가서 40년 동안 내렸던 그 만나에서 소중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광야의 만나는 지속력이 매우 짧았다고 했습니다. 하루만 지나면 썩었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신선한’ 만나만을 먹어야만 했습니다. 어제 받은 은혜로는 살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어제의 간증(干證)으로 오늘 살아있는 척 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해가 뜨기 전, 이른 새벽에 광야로 나아갔습니다. 밤새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는 새벽 달빛에 별처럼 하얗게 빛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허리를 굽히고 손으로 소중하게 그 만나들을 주어서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그 차가운 새벽에 그들의 손 끝에 느껴지는 만나의 신선함을 상상해 보십시오. 40년 동안 매일 새벽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만들어 낸 기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새벽마다 그들의 손 끝에서 [신선함]을 넘어 [신비함]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매일 새벽 그 신비함과 신실하심 앞에 겸손히 무릎을 꿇고 감사함으로 만나를 거뒀던 그들만이 오직 그들만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필요한 새벽 경건입니다. 매일 TV 뉴스를 30분 이상 봅니다. 매일 TV 드라마를 1시간 이상 시청합니다. 매일 30분 이상 반려견에게 산책을 내어줍니다. 매일 1시간 이상 SNS를 통해서 내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뿌립니다. 매일 좋은 약을 챙겨 먹고, 매일 맛있는 음식을 먹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습니까? 여러분의 손 끝의 경건은 괜찮습니까? 여러분의 손 끝에는 새벽의 신선함이, 새벽의 신비함이, 새벽의 신실하심이 매일 있습니까? 우리의 손 끝에서 성경이 떨어지는 순간 우리의 삶은 썩어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매일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필사(筆寫) 하십시오. 그 은혜의 원천에서 멀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나가 없는 빈 광주리만 끼고 살지 않아야 합니다.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잠언 16:24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
시편 119:10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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