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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갑 선교사 - 11월 8일 은혜의 말씀
Made in Jesus
사 5:1-7
한 농부가 최상의 포도를 수확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했습니다. 먼저 기름진 땅을 준비했습니다. 그 땅을 파고 돌을 제거했습니다. 그리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농부는 포도원을 지키기 위해서 망대도 세웠고, 술틀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극상품 포도가 아니라 들포도를 맺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사야서 5장은 그 들포도 이야기로 시작했습니다.
포도 농사를 해 본 적이 없어서 포도를 어떻게 재배하는지 알아보았습니다. 포도 재배에 필요한 상식은 이러했습니다.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아야 한다. 강수량은 적당해야 한다. 자연적인 배수가 용이하도록 경사진 언덕에 심어야 한다. 토질은 척박해야 뿌리가 깊고 넓게 뻗을 수 있다. 꽃이 피면 포도넝쿨을 솎아주고, 햇가지는 나무에 묶어준다. 포도송이가 열리면 잎을 따줘서 일조량을 충분히 받도록 해준다. 병충해가 없도록 잘 관리한다, 등등. 그처럼 힘들게 일한 농부가 극상품 포도를 기대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들포도만 맺었다면 그 농부의 한숨이 얼마나 깊었겠습니까? 유대 땅에 있는 들포도는 딱딱하고 시큼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포도들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켰습니다. 오늘 본문 5:7절입니다. “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께 그 기쁨이 되는 극상품 포도가 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모든 민족들 위에 최상의 포도가 되기를 기대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 실망만 안겼던 들포도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렘 2:21절입니다. “내가 너를 순전한 참 종자 곧 귀한 포도나무로 심었거늘 네게 대하여 이방 포도나무의 악한 가지가 됨은 어찜이뇨?”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몹시 실망하셨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포도 농사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포도 농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 두 번째 포도나무는 하나님께 극상품 포도를 내어 드렸을까요? 대답은 “예”입니다. 그 두 번째 극상품 포도나무는 곧 예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1절입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이 예수님의 선포는 모든 열방과 모든 민족이 들어야만 하는 복음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은 가지들은 다 극상품 포도를 맺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요 15:4, 8)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유대인’하면 무조건 그들을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들에게 배울 것이 참 많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그들을 더 이상 존경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지금도 예수님을 참 포도나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의 입에 시큼한 신 들포도를 짜서 먹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들을 가리켜 우리는 하나님의 선민백성이며, 모든 민족 가운데 가장 위대한 민족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들 안에는 예수님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셨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요15:5-6)”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손이 닿기만 하면, 예수님을 붙잡기만 하면 버려졌던 들포도들이 극상품 포도로 변했습니다. 부정한 자로 분류되어 평생 음지에서 살아야만 했던 한 한센인의 손을 예수님께서 잡아 주셨을 때, 들포도처럼 버려졌던 그의 삶은 극상품 포도처럼 되었습니다. 혈루증 환자였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는 순간 그의 병든 육체뿐만 아니라 그의 삶 전체가 극상품 포도처럼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났던 그런 기적의 이야기들을 말한다면 수일 밤을 새워도 끝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처럼 우리에게 대 반전을 주셨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발 씻는 물로 극상품 포도주가 되게 하셨던 첫 번째 기적 속에도 놀라운 메시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 사회에서 이방인은 버려진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도 품어주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 가나안 여인, 로마의 백부장 등등. 그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왔을 때 그들의 삶은 극상품 포도로 변하여 대 반전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 주님의 품어주심을 [접붙임]으로 설명했습니다. (롬 11:17)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에 접붙이게 되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받게 되어 좋은 감람나무(올리브)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다고 했습니다. 로마서 11:23절입니다.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정리합니다. 세계에는 흔히 최상품 과일들이 있습니다. 오렌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산이 최고입니다. 망고는 필리핀산이 최고입니다. 포도는 프랑스산이 최고입니다. 귤은 제주도산이 최고입니다. 참외는 성주산이 최고입니다. 그처럼 각 지역마다 지역 특산품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극상품 포도나무’는 어디에서 재배한 포도였을까요? (사 5:2) 구약 시대 때, 유대에서 가장 유명했던 포도는 소렉(Soreq)에서 재배된 포도였습니다. 소렉은 지금의 팔레스타인 가자(Gaza) 근처에 있는 곳으로 지중해가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언덕에 있었습니다. NIV, KJV 영어성경들은 그 ‘극상품 포도나무’를 모두 ‘the choicest vine’으로 번역했습니다. “#1 포도나무”라는 뜻일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히브리 원어 성경에는 “the vine of soreq (קרש)”으로 기록했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극상품 포도는 바로 소렉(Soreq)산 포도였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종자도 아니고, 최고의 품종 소렉산 포도나무를 심었는데, 그 포도나무에서 들포도가 나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처럼 100% 성공률을 0%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하나님께 큰 실망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두 번째 포도나무를 심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두 번째 포도 농사를 하실 때 소렉(Soreq)산의 명품 포도나무를 다시 심으셨을까요? 아니었습니다. 앞에서 말한대로 두 번째 포도나무는 소렉의 [극상품] 품종이 아니라 [참] 포도나무를 심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셨습니다. 그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늘 그 주님 안에 거하십시오. 참 포도나무이신 주님 안에 거하면 우리 안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가 되고, 들포도가 극상품 포도가 됩니다. 우리 손에 있는 물질적 축복을 보기 이전에, 우리 안에 일어난 놀라운 변화를 봐야 합니다. 우리는 누구입니까? 한국산(Made in Korea)입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접붙임바 되어 새롭게 지음을 받은 [예수님의 걸작품: Made in Jesus]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보실 때마다 미소 짓는 주님이 되시도록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분의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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