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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M 선교통신 201호

동남아한센봉사회

양한갑 최영인 선교사

 

알린의 이야기

   딸라교회 성도 알린(Arlyn: 1975년생)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알린은 25년 전에 한 빵집에서 일했습니다. 빵 맛이 좋다는 소문이 나면서 주인은 종업원을 더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 수줍음이 많은 한 청년이 새로 들어왔습니다. 알린보다 2살이 어린 청년이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니퍼(Joniffer: 1977년생)였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의 진실한 사랑은 높은 장벽까지 허물었습니다. 조니퍼는 한센인이었습니다.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했는지 자녀들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첫째 딸을 낳았을 때 엄마의 이름 끝 자(lyn)를 따서 조나린(Jonalyn)이라 했습니다. 첫째 아들의 이름은 아빠의 이름 끝 자(ffer)를 따서 제퍼슨(Jefferson)이라고 했습니다. 그처럼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이름을 나눠줌으로써 그들의 사랑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그들을 처음 만났던 때는 11년 전이었습니다. 그때는 빵집을 그만 두고, 딸라로 들어와서 살 때였습니다. 조니퍼는 쓰레기 판자들을 주어다가 개천 가장자리에 무허가로 집을 짓고 살았습니다. 집에는 모기와 파리 떼가 항상 득실거렸고, 개천에서 올라오는 썩는 냄새는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 가난한 가정이었습니다. 조니퍼는 자전거를 개조해서 만든 패디캡(pedicab) 운전수였습니다. 그 자전거도 살 수 없어서 하루에 80페소를 주인에게 주고 대여해서 돈벌이를 했습니다. 그런 형편인데 조니퍼는 마치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계속해서 아이들을 낳았습니다. 모두 7명을 낳았습니다. 셋째 제퍼슨은 뇌수종으로 보통 아이들보다 머리가 2배나 컸습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스스로 일어난 적이 없습니다. 제퍼슨 다음에 아들을 낳았지만, 제퍼슨의 장애때문에 키울 수가 없어서 그 아들은 다른 집으로 입양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3년 전에 일곱 번째 아이를 낳았는데 다운증후군으로 태어났습니다. 막내 자이리(Jayree)도 지난 3년 동안 단 한 번도 스스로 일어난 적이 없고, 단 한 마디로 해 본적이 없습니다. 두 아이가 24시간에 누워있습니다. 두 장애인을 두었지만 알린은 필리핀 정부로부터 그 어떤 후원도 받아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둘째 딸 자스민(Jasmin)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자스민은 17살입니다. 내년 초에 고등학교를 졸업합니다. 아주 총명한 아이입니다. 일찍부터 제 눈에 띄었던 아이였습니다. 컴퓨터를 너무 잘해서 2년 전에는 그에게 랩탑(laptop) 컴퓨터를 사줬습니다. 그때부터 주일예배 때 영상 담당을 맡아서 섬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주(17일) 주일예배를 마치고 제 사무실로 찾아왔습니다. 쥬디안전도사도 함께 들어왔습니다. 쥬디안이 말문을 열었습니다. “목사님, 자스민이 내년에 신학대학에 가고 싶어 합니다.” 오래 전부터 마음에 둔 아이였기 때문에 너무 기뻤습니다. 다음 주까지 신앙 간증문과 왜 신학대학에 가고자 하는지 그 이유를 써서 제출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스민에게 그의 아버지 안부를 물었습니다. “아버지도 잘 계시지?” “.........” 자스민은 대답을 하지 않고 갑자기 소리 없이 울기 시작했습니다. 쥬디안이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작년에 목사님이 한국으로 가신 이후에 자스민 아빠가 돌아가셨어요.” “뭐라고? 어떻게? 병으로? 사고로?” 자스민은 말없이 울기만 했습니다. 쥬디안이 다시 무겁게 말문을 이어갔습니다. “자살하셨어요.” “뭐라고? 자살했다고?” 저에게는 너무 충격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자스민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자스민이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사람들이 다니지 않게 되자, 아빠는 자전거를 주인에게 돌려주고 실업자가 되셨어요. 저희는 먹을 것이 없었어요. 매일 저녁은 굶었어요. 아빠는 여기저기에서 돈을 빌려서 쌀을 사왔는데 더 이상 빌릴 곳이 없었어요.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돈을 빨리 갚으라고 아빠를 괴롭혔어요. 돌아가신 그 날 저녁이었어요. 언니와 저만 앉혀 놓고 아빠가 말씀하셨어요. “동생들을 잘 챙겨주기 바란다.” 그 말이 아빠의 마지막 날이 되었어요. 그 말을 듣고 우리는 모두 잠 들었어요. 그런데 새벽 5시쯤, 엄마가 크게 소리를 쳐서 모두 깨었는데 아빠의 입에서 검은색 액체가 흐르고 있었어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아빠는 오토바이 수리점에서 엔진 오일을 바꾸고 버린 폐유를 모아서 집으로 가지고 와 다 마셨다고 해요. 동네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쳤고, 동네 사람들이 아빠를 병원으로 모시고 갔지만, 아빠는 1시간 만에 돌아가셨어요.”

   코로나는 한 한센인의 삶까지 그렇게 죽게 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언니가 작년에 대학에 입학했는데, 아빠가 돌아가시자 휴학하고, 밀크 차(Milk Tea)를 파는 가게에서 일하고 있어요. 언니가 벌어오는 돈으로 견디고 있습니다.” “언니는 얼마나 버는데?”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저녁 8시간까지, 12시간 일하고 200페소를 받는다고 했습니다. 한화로 4,800원입니다. 1시간 시급이 아니라 12시간 일하고 받는 일당이 4,800 원이었습니다. 쥬디안전도사가 “그래서 교회에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자 작년부터 알린(Arlyn)에게 교회 청소 일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자스민이 혼자 다 하고 있습니다. 알린은 두 아이들 때문에 집을 떠날 수 없어서.....” 첫째 딸 조나린은 밀크 가게에서, 둘째 딸 자스민은 교회 청소하고 번 돈으로 일곱 식구가 버텨온 것입니다. 거기까지만 듣자고 했습니다. 아빠에 대한 아픈 기억이 자스민을 힘들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딸라에서 교인들을 도와줄 때 공평하게 도와주는 것이 하나의 ‘공식’이 되었습니다. 공식적으로 돕지 못하면 극비로 도와왔습니다. 형편들이 모두 비슷비슷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를 도와줬다는 소문이 퍼지면, 다른 사람들이 “저는요?”라고 했습니다. 다 어렵기 때문입니다. 조니퍼의 형편과 비슷한 한센인들이 딸라에는 한 둘이 아닙니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특별한 말씀을 주셨습니다.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설교를 올렸습니다. 10월 17일에 “지금입니다.”라는 설교를 올렸는데, 갑자기 다른 말씀을 주셔서 3일 후에 “당신이었군요.”라는 설교를 또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설교를 올리면서 이렇게 기도했었습니다. “하나님, 알린을 돕고 싶습니다. 두 딸은 대학을 들어가야 하고, 두 자녀는 장애인입니다. 한센인이었던 남편은 많은 빚을 남겨놓고 갔습니다. 오늘 설교에서 언급된 나귀를 내어줬던 그 주인처럼, 오병이어를 내어줬던 그 어린이처럼, 다락방을 내어줬던 그 사람처럼, 알린 가족을 도울 수 있도록 누가 저에게 500만원만 내어주면 좋겠습니다.” 정말 그렇게 기도했었습니다.

   그 다음 날이었습니다. 21일 목요일 아침에 선교비 입금을 확인하기 위해서 선교회 계좌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입금자 중에서 아는 분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알지만 그 분의 이름으로 선교비를 받았던 적은 없었습니다. 그 분의 이름을 따라서 옆으로 이동을 해서 입금된 금액을 보는 순간 제 심장이 순간 멈춰버렸습니다. "5,000,000원” 이었습니다. 분명히 500만원이었습니다. 그때 제 입에서 튀어나왔던 말은 “당신이었군요!”였습니다. 그 분의 성함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3년 전, 2018년 12월 28일에 미얀마 양곤에서 송재선장로님과 함께 처음 만났던 분이었습니다. 그 만남 이후에 저희는 개인적인 연락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일(수요일)에 드렸던 기도대로 그 다음 날 21일에 정확한 금액이 입금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곧바로 확인 이메일을 드렸습니다. 그 분은 본인이 보낸 선교비가 맞다고 확인해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해두셨던 "당신이었군요" 바로 그 분이었습니다.

   저는 오늘 주일예배를 마치고 전도사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알린을 돕는 계획을 전도사들에게 전하고 그 일은 알린 외에는 그 누구도 몰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알린의 집으로 갔습니다. 지금 알린은 필리핀 정부에서 한센인들에게 제공해 준 한센인 집단촌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돕는다는 사실을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면 빚쟁이들이 몰려 올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우리의 후원을 알 수 없도록 극비리에 진행해야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알린의 집은 일곱 명이 함께 누울 수 없을 만큼 아주 작습니다. 방에는 제퍼슨과 막내 자이리가 엎드려 있었습니다. 제퍼슨이 많이 성장해 있었습니다. 저를 알아보고 크게 기뻐했습니다. 그들을 도울 수 있게 되어서 너무 기쁘고 감사했었습니다. 알린의 가족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를 해주고, 알린의 손에 몰래 돈을 쥐어줬습니다. 오늘 저녁은 아이들에게 고기를 해주라고 했습니다.

   전도사에게 지시했던 후원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알린은 두 명의 장애인 자녀 때문에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해답은 두 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게 되면 직장을 갖게 되고 그때는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도움은 첫째 딸 조나린과 둘째 딸 자스민의 4년 대학 학비를 지원해 줄 것입니다. 둘째는 알린이 진 빚을 갚아줄 것입니다. 남편 조니퍼가 남긴 빚은 조니퍼가 죽었기 때문에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조니퍼가 죽은 이후 지난 1년 동안 알린이 또 빚을 졌습니다. 모두 양식을 구입하는데 쓴 빚이었습니다. 코로나 상황이라 개인으로부터는 꿀 수가 없어서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렸다고 합니다. 갚지 않으면 이자가 늘어나기 때문에 빨리 갚아야 합니다. 알린의 빚은 총 50만 원 정도라고 했습니다. 전도사들에게 대부업체로 직접 가서 알린의 빚을 다 갚으라고 지시했습니다. 셋째는 매월 쌀 반 포대(25kg)를 지원합니다. 쌀이 없으면 또 빚을 져야하기 때문입니다. 넷째는 가스 스토브를 장만해 주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매일 나무로 밥을 짓고 있습니다. 장애아를 둔 엄마에게는 너무 힘든 일입니다. 다섯째는 교회 청소 일을 당분간 알린 가족에게만 주라고 지시했습니다. 여섯째는 제퍼슨과 막내 자이리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검진을 받고 공식 장애인 등급 판정을 받아 그 증명서를 받아오라고 했습니다. 필리핀 복지부에 그 증명서를 제출하면 장애인 복지 카드를 받을 수 있고, 그 카드가 있으면 병원비와 약을 구입할 때 20% 할인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동안 그것을 하지 못했던 것은 병원에 가서 장애 등급 판정을 받을 수 있는 검사비가 없어서 못했던 것입니다. 전도사들에게 장애인 복지 카드를 받을 때까지 책임지고 동행하면서 도우라고 지시했습니다.

   마치겠습니다. 알린 가족을 도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소중한 일을 할 수 있도록 “당신이었군요!”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분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와 고마운 마음을 알린의 가족을 대신해서 드립니다. 빚에 짓눌려 살았던 힘없는 가장 조니퍼. 두 명의 장애인 자녀들을 매일 고통스럽게 지켜봐야만 했던 힘없는 아빠. 두 딸의 벅찬 대학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무능한 아빠, 코로나때문에 자전거까지 반납하고 빈털터리가 된 아빠. 그리고 마지막 가는 길에 필요했던 약 살 돈도 없어서 남들이 깡통에 버린 폐유를 긁어모았던 가련했던 한센인 조니퍼. 아빠의 책임까지 두 딸에게 넘겨주고 그 아빠는 그렇게 먼저 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남겨진 그 여섯 명의 자녀들 모두가 활짝 웃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왜냐구요? 엄마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엄마의 자리를 지켜주고 있는 알린이 그래서 고마웠습니다. 저희는 최선을 다해서 알린을 도울 것입니다. 똑똑한 두 딸이 대학을 졸업하면 아버지의 유언대로 동생들을 잘 챙겨주는 든든한 누나와 언니들이 될 것입니다. 특별히 신학대학으로 가는 자스민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한센선교를 이끌고 갈 수 있는 훌륭한 차세대 리더로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주 총명하고, 밝고, 바른 아이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우리의 신음 소리까지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알린.jpg

 

양한갑선교사 (Joshua H. Y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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