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8:3-4

제목: “율법과 성령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율법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율법은 좋은 것일까요, 나쁜 것일까요? 율법은 좋은 것이나 율법주의는 나쁜 것입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사는 길을 가르쳐 주는 것이라면, 율법주의는 율법을 지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살아갈 길을 가르쳐 주기는 하는데 그렇게 살아 갈 힘을 주지는 못합니다. 율법으로는 다만 죄를 깨닫게 됩니다(7:7, 3:20).

율법이 우리로 하여금 의롭게 살게 해 주지는 못하는 이유는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졌기때문입니다(8:3). 육신은 옛 성품의 집합체요, 욕망의 저장소입니다. 이러한 율법의 한계로 인해 하나님은 그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셨습니다. “죄 있는 육신으로 보내신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으로 보내셨지 죄인으로 보내시지는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죄가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짊어지시고 죄인된 우리 대신 고난 받으심으로 인해 대속의 역사를 이루실 수 있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3:25).

우리의 죄 문제를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가 육신을 좇지 않고 성령을 좇아 행할 때 율법의 요구가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8:4). 우리 안에는 검은 개와 흰 양이 함께 있는데 검은 개는 육신을, 흰양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무엇을 스스로에게 공급해 주는가에 따라서 검은 개가 강해지거나 아니면 흰양이 강해집니다. 검은 개가 좋아하는 것은 방탕과 술취함, 음란과 호색, 쟁투와 시기함등입니다(13:13). 반면에, 흰양이 좋아하는 것은 말씀, 기도, 예배, 찬양, 사랑, 기쁨 등입니다.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4)는 말씀의 뜻은 정욕을 충족하기 위하여 육신이 좋아하는 것을 공급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좇아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게 됩니다(5:16).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않게 됩니다(5:18).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지켜 살 수 있습니다(딤후 1:14).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라는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으로 율법을 지켜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