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5:3-10

제목: “화평케 하는 자의 복”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켜 보면서 우리는 평화가 얼마나 귀중한 것임을 실감합니다. 우찌무라 간조의 “구안록”은 이름 그대로 평안을 구하며 살아간 기록입니다. 그가 평안을 얻기 위해 학문, 인격수양, 자연교감, 종교, 자선활동, 신학교 등등 온갖 경로로 노력했지만 그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그리스도의 속죄의 은혜에서 평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불화의 근원은 죄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인간의 탐욕과 교만이란 죄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불화도 우리의 죄 때문이었습니다(사 59:1-2). 반면에, 모든 평화의 근원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은혜로 평화와 화목이 임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고후 5:18).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4-16).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케 되고 구원을 얻은 것도 십자가와 부활 때문입니다.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예수님이 화목케 하는 자로 살아가셨 듯이 이제는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자의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 가는 자에게 임하는 복이 있는데 바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된다고 하셨습니다(마 5:9). 평화와 관련하여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화를 깨트리는 자(peacebreaker), 평화를 유지하는 자(peacekeeper), 그리고 평화를 이루는 자(peacemaker)입니다. 평화를 이루는, 화평케 하는 자에게 꼭 필요한 것이 있으니 온유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팔복의 제 3의 복과 제 7의 복이 연결이 됩니다. 자기를 낮추고 비우고 하나님을 기대하여 온유한 자만이 하나님이 이루시는 평화의 도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평강의 하나님이십니다(히 13:20). 우리 주님은 평강의 왕이십니다(사 9:6).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평강의 복음입니다(엡 6:15). 화평케 하는 자로 사셨던 평강의 왕, 예수님을 따라서 화평케 하는 자가 되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 받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