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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갑 선교사 - 8월 19일 은혜의 말씀
잠잠할지니라.
눅 23:1-12
헤롯대왕(마2:1, 19)의 가계도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보겠습니다. 헤롯대왕은 이스라엘 남쪽 광야에 있는 이두매(Idumaea) 출신으로 이스라엘 혈통이 아니었지만, 유대 왕이 된 사람입니다. 그의 업적 중에 하나는 예루살렘 성전 신축을 들 수 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환심을 사기 위해서 스룹바벨이 세웠던 제2성전을 헐고, 대리석과 금으로 장식한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에 이어 세 번째로 세워졌던 그 성전을 헤롯 성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성전도 예수님 이후에 파괴되어 현재까지 재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받았던 사람이 바로 헤롯대왕입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이 이집트로 피신한 후에 죽었습니다.
헤롯대왕이 죽은 후에 그의 유언대로 이스라엘의 영토는 세 등분되어 세 아들들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세 아들에게는 ‘대왕’이란 칭호 대신에 ‘분봉왕’이란 칭호가 주어졌습니다. 한 지역의 ‘통치자’란 뜻이었습니다. 헤롯 대왕의 왕궁과 성전이 있었던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지경은 헤롯 아켈라오(Archelaus)에게 주어졌습니다. 갈릴리와 베레아 지경은 헤롯 안디바(Antipas)에게 주어졌습니다. 이두래와 드라고닛 즉 지금의 갈릴리 동북쪽 골란 고원(Golan Heights) 지경은 헤롯 빌립(Phillip)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아켈라오와 빌립의 권세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헤롯 아켈라오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비밀 사절단을 로마로 보내어 그를 황제에게 고발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헤롯 아켈라오는 사절단으로 갔던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포함 약 3,000명을 잔인하게 학살했습니다. 그 학살 사건 때문에 2년 후에 그는 폐위되고 말았습니다. 막내 헤롯 빌립은 원인을 알 수 없는 이유로 갑자기 죽고 말았습니다. (AD 34년) 그래서 한 사람만 남게 되었습니다. 그가 헤롯 안디바입니다. 그는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다아를 취한 사람이었고, 세례요한을 죽인 사람이었고, 예수님까지 죽인 사람이었습니다.
그 혼란의 시대 속에서 헤롯 안디바가 노리는 것이 있었습니다. ‘분봉왕’이 아니라 ‘대왕’이란 지위를 합법적으로 갖는 일이었습니다. 아버지 헤롯 대왕도 죽고, 두 형제들도 이미 없어졌고, 분봉왕 중에서 혼자만 유일하게 남았는데 그를 유대의 왕으로 인정해주는 로마 황제의 비준(批准)이 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갈릴리 분봉왕으로서 갈릴리 호수 왼쪽 언덕 디베랴(Tiberias)에 궁을 건축했었지만, 그는 그곳에서 살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와서 헤롯 왕궁에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 황제의 비준이 없어도 이미 자신은 유대의 왕이라고 선언한다는 뜻이 담긴 정치적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이란 한 울타리 안에 있었던 로마제국의 총독 빌라도는 헤롯 안디바를 유대의 왕으로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여전히 안디바를 ‘갈릴리 분봉왕’으로만 취급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빌라도가 했던 말을 주목해 보겠습니다.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그러면 헤롯의 관할에 속한 사람이니 예수를 그에게 보내라 하니, 그때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눅 23:6-7)라고 했습니다. “헤롯의 관할에 속한 사람”이란 표현은 빌라도가 헤롯 안디바를 여전히 갈릴리 분봉왕으로 취급했다는 뜻이었습니다. 헤롯 안디바와 빌라도 사이에는 그처럼 정치적 알력(軋轢) 다툼이 팽팽하게 유지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 이해를 가지고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제사장들과 광란의 무리들은 예수님을 먼저 빌라도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은 “네 말이 옳도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헤롯 안디바가 그 말을 직접 들었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죄가 없다니? 말이 되는 소리를 하시오. 유대의 왕은 바로 나요. 나!”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죽이려했던 무리들은 죄가 없다는 빌라도의 말에 크게 분노했습니다. 빌로도는 그렇게 헤롯에게 공을 던졌습니다. 헤롯은 예수님께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눅 23:9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그 당시에 정상적인 사람은 없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더 슬픈 사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눅 23:12절입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였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깊은 한숨이 흘러나옵니다. 정치인들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서라면 본질이 달라도 상황에 맞춰서 같은 색으로 바꾸는 카멜레온들이 됩니다. 그 더러운 정치 놀이터에서 예수님의 대응은 침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아무 말씀을 하지 않음이 무능입니까? 자포자기입니까? 굴복입니까? 투항하신 것입니까? 성전 안에서 제물될 동물들을 팔았던 사람들, 돈을 바꿨던 사람들을 향해서 크게 진노하시며 채찍으로 치시고, 그들의 상을 뒤엎어버리셨던 그 분노는 어디로 갔던 것입니까? 그러므로 헤롯 안디바 앞에서 주님께서 깊이 침묵하셨던 이유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습니다.
아픈 아내를 데리고 병원을 다시 찾았습니다. 다음은 담당 의사와 나눈 대화의 내용입니다. “드린 약들 성실히 다 복용하셨지요?” “네.” “많이 좋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약을 몇 개 바꾸겠습니다. 또 힘드시겠지만 새 약도 시간에 맞춰서 잘 복용하셔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네.” “육류는 피하세요. 아시겠지요?” “네.” “다음 주에 다시 뵙겠습니다.” “네.” 저희가 담당 의사에게 했던 말은 처음부터 끝까지 “네”뿐이었습니다. 제가 모자라서, 제가 아는 것이 “네”라는 대답밖에 몰라서 무조건 그 분에게 “네”라고 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선생님이 당부하시는 말들이 다 제 아내의 치료를 위해서 최선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온 세계는 코로나 환자가 되어 있습니다. 환자가 살고 싶으면 의사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대답은 ‘네’ 뿐입니다. “반드시 마스크 쓰세요.” “네.” “거리두기 지키세요.” “네.” “8월 31일까지 대면 예배는 갖지 마세요.” “네.”
그 “네”란 대답이 교회의 권위를 떨어트리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 앞에서 아무 말씀하지 않으셨던 것은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생각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헤롯의 궁에서, 빌라도의 뜰에서 주님이 털 깎는 어린양처럼 입을 굳게 다물고 계셨던 것은 우리를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죄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주님이 죽으셔야만 하셨는데, 주님은 그 일에만 집중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느니라.”(요 10:11) 그 말씀대로 헤롯 안디바가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희롱할 때도 예수님은 우리만을 생각하시고 계셨습니다.
제 눈에도 보입니다. 정권을 탈환하고 공식적으로 한 나라의 대왕이 되고자 했던 헤롯 안디바의 야망과 당신은 분봉왕으로도 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빌라도의 거들먹거림이 충돌하면서 서로 정치적 앙숙이 되었지만, 예수님을 처형하는 일에는 절친이 되었던 두 사람의 사악함이 제 눈에도 보입니다. 정치가 그렇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을 닮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정치 소용돌이 가운데 희생양으로 홀로 서 계실 때 주님은 우리만을 생각하시며 침묵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앞에, 지금 한국교회 앞에 헤롯 안디바와 빌라도와 광란의 무리들이 진을 치고 있다할지라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침묵입니다. 지금은 “내 정치 철학이 옳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 거리로 나갈 때가 아니라, 한국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성전에 엎드려 기도할 때입니다. 성전으로 들어가는 일은 비굴하게 숨는 일이 아닙니다. 기도의 무릎을 꿇은 일은 세상 정권에게 굴복하는 일이 아닙니다. 의사선생님에게 ‘네’라고 말하는 일과 같습니다. 그래야 우리가 속히 치료될 수 있고, 그래야 성전 예배가 속히 회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바국 2:20)
주여, 이 땅에 임하소서. 우리를 고쳐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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