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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갑 선교사 - 9월 18일 은혜의 말씀
이리로 올라오라.
계 4:1
예루살렘 성문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 다윗(BC 1030~961)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정하고 다윗 성을 건축했습니다. 우리나라 태조 이성계(AD 1356~1392)도 조선을 건국하고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후에 한양(漢陽) 성을 건축했습니다. 고대사회는 국가의 안녕과 전쟁에서의 방어를 위해서 그처럼 나라마다 성벽을 두텁게 건축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관한 역사를 보면, 예루살렘은 50번 포위를 당했고, 6번 정복을 당했고, 10번 파괴를 당한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무너지면 다시 세우고, 무너지면 또 다시 세우기를 되풀이 하면서 다윗이 처음 건축했던 그 성벽은 없어졌습니다. 현재 우리가 보고 있는 예루살렘의 성벽은 오스만 터키의 술래이만(Suleiman) 대제가 1538년-1542년
성문(城門)의 기능
성문은 방어 목적 외에 이스라엘의 경우 평화 시에는 크게 네 가지 기능이 추가 되었습니다.
첫째, 성문에는 시장이 있었습니다. (왕하 7:1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성(城)은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크기는 아니었습니다. 성(成) 안 사람들은 왕과 왕족, 귀족, 제사장, 행정관, 군인 등등 제한된 사람들만이 거주했고, 성(成) 밖에는 평민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 안 사람들과 성 밖 사람들이 만나 서로 물물교환을 했던 시장이 성문에 있었습니다.
둘째, 성문에는 재판소가 있었습니다. (신 21: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들이 그들의 문제를 가지고 성문으로 나아가면 재판관은 성문에서 시시비비를 가려주었습니다.
셋째, 성문에는 우상들의 산당(山堂)이 있었습니다. (왕하 23:8 “또 유다 각 성읍에서 모든 제사장을 불러오고 또 제사장이 분향하던 산당을 게바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더럽게 하고 또 성문의 산당들을 헐어 버렸으니 이 산당들은 그 성읍의 지도자 여호수아의 대문 어귀 곧 성문 왼쪽에 있었더라.”)
넷째, 비상시에는 왕이 성문으로 나아와 백성들을 대면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왕상 22:10 “이스라엘의 왕과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왕복을 입고 사마리아 성문 어귀 광장에서 각기 왕좌에 앉아 있고 모든 선지자가 그들의 앞에서 예언을 하고 있는데”)
그러나 성문에서 항상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구리구리한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성문의 시장에는 속이는 저울이 있었고,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공의를 저버렸고, 우상숭배자들은 성문을 그들의 놀이터로 만들었고, 왕은 백성들의 소리를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났고, 그래서 성문은 큰 파괴를 당하고는 했습니다.
선지자 아모스는 성문을 더럽히고 위태롭게 만든 이들을 향해서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아모스 5:7, 10, 12절입니다.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무리가 성문에서 책망하는 자를 미워하며, 정직히 말하는 자를 싫어하는도다. 너희의 허물이 많고, 죄악이 무거움을 내가 아노라. 너희는 의인을 학대하며 뇌물을 받고 성문에서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하는 자로다. 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성문에서 정의를 세울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신중하게 보면 하나님이 주시하셨던 것은 성벽의 높이와 두께가 아니라, 성문에 정의와 공의가 있느냐 없느냐 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실만한 성문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정의와 공의를 가진 성문이 있을 리가 없었습니다. 부정(不淨)과 부패(腐敗)가 넘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절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친히 온전한 성문(城門)이 되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7-9절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그 문은 결코 사람의 손에 의해 닫히거나, 더럽혀지거나, 파괴될 수 없는 문이었습니다. 영원히 정의와 공의가 보장된 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성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이 복음(福音)입니다.
요즘 코로나로 인해서 문을 닫은 가게들이 많아졌습니다. 교회의 문도 닫게 했습니다. 선교지로 돌아가고 싶어도 문이 닫혀서 갈 수가 없습니다. 안타깝고 답답함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크게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문은 가장 끝자락에 있는 마지막 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앞에는 많은 중문(中門)들이 열렸다 닫혔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는 길 끝에 있는 문이 닫힌다면 그것은 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마지막 문이 닫힌다면 미련한 다섯 처녀들처럼 우리는 크게 울부짖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앞에 [열린 문]을 주신 주님께 무한한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읽을 때마다 저는 온 몸으로 감사와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립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수많은 실패와 좌절로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옥과 같은 그곳이 우리에게 마지막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입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늘 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로부터 이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계 4:1) 할렐루야입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리로 올라오라. 이리로 올라오라.” 이 놀라운 음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받은 모든 주의 신부들에게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그 주님의 음성이 있다면 주님께 무엇을 더 바랄 수 있을까요? 주님께 무엇을 더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 앞에 [열린 성문]을 주신 주님께 두 손 높여 감사와 찬양만 드릴 뿐입니다. 이 음성을 드리십시오.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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