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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한갑 선교사 - 필리핀, 선교통신 163호(12월 1일)
ALM 선교통신 163호
동남아 한센 선교회
양한갑/최영인 선교사
인도 바르구르 선교
인도 한센 현황
저에게 인도는 죽기 전에 꼭 가보고 싶었던 신비의 땅은 아니었습니다. 한센 선교사로서 꼭 가봐야만 하는 숙제의 땅이었습니다. 전 세계 2,000만 한센인들 가운데, 현재 인도에만 약 60% 이상의 한센인이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매년 (2010-2018년) 새 감염자 수가 약 130,000명으로 세계 1위 국가입니다. 그래서 인도 한센인들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먼 길이었습니다. 온몸이 습자지처럼 찢어지고 있었지만, 그처럼 오고 싶었던 그 인도에 드디어 왔다는 생각 때문에 그동안 가지고 있던 무거운 짐을 이제 벗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날부터 제 눈앞에 펼쳐진 광경들을 보면서 무거운 짐을 벗은 것이 아니라, 더 큰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1990년까지 인도 한센인들은 전 세계 한센인들 가운데 75%를 차지했었습니다. 그래서 세계 각국에서 인도 한센인들을 돕기 위해서 인도로 집결했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NGO 단체들, 여러 선교단체들, 여러 교회와 개인이 인도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한센인들을 위한 막대한 후원비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악한 자들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그들 때문에 더 고통 받고 있는 인도 한센인들을 보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이번 인도 선교는 인도 남부 바르구르(Bargur)에서 한센선교를 감당하고 있는 국제의료봉사회 현옥철목사님의 초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첫날은 인도 목회자 60명과 함께 했던 목회자 세미나가 있었는데, 제가 인도를 했습니다. 그 다음 이틀은 한센 마을 두 곳에서 의료선교를 했습니다.
1) 바르구르 한센 마을 (Bargur Leprosy Colony)
바르구르 한센 마을은 인도 정부가 조성한 마을입니다. 마치 물류 창고처럼 약 20미터가 되는 긴 건물들이 많았는데, 그 건물 안에서 약 30명의 한센인들이 함께 살았던 막사형 집성촌이었습니다. 한때는 3,000명 이상의 한센인 가족이 살았지만, 현재는 약 300명만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인도 정부는 한센인에게 무료 급식과 거주 공간을 제공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면 인도 정부가 한센인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정작 한센인들은 그 마을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뭔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그 답을 찾아보기 위해서 한 시간 이상 마을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꼼꼼이 살폈습니다. 바깥에서 보면 모든 시설들이 반듯하게 보였지만, 실제로 가까이 가서 보니 모두 폐가가 된 건물들이었습니다. 사람이 있어야 할 집 안에는 잡초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땅은 비옥하게 보였지만, 호미질을 한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빨래터에는 낙엽이 무성하고, 공동화장실 문들은 모두 부서져 있었습니다. 바르구르 한센 공동체가 그처럼 사막화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는 인도 정부와 그곳에 파견된 관리자들이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수 십년 전에 건축된 현재의 건물들은 한센인들에게는 꿈의 집과 같았을 것입니다. 40년, 50년 전에 시멘트으로 지은 집에서 사는 한센인들이 몇 명이나 되었겠습니까? 대부분 산에서 대나무 혹은 바나나 잎으로 만든 초막에서 살았거나, 거리에서 거적을 펴고 살았을 한센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현재의 건물은 궁정과도 같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폐허가 된 건물들 지붕 위에는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TV 위성 안테나들이었습니다. 한 지붕 위에 2개 혹은 3개까지 있는 막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떠난 지금 그 위성 안테나들은 삭아서 구멍이 뚫어져 있었습니다. 그 안테나를 통해서 한센 마을 안으로 화려한 바깥세상이 들어왔던 것입니다. 한센인들은 마을 공동 식당에서 무료 배식을 받기 위해서 긴 줄에 서 있는 것 보다, 내가 먹고 싶은 요리를 직접 해서 먹고 싶다는 욕망이 점점 커졌을 것입니다. 그 욕구가 커지면서 그들은 공동체 안에서 사는 삶을 자유가 없는 감옥에 갇혀 하는 삶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 안에서는 내 것은 없었습니다. 먹을 것이 해결되자, 그들도 내 것을 갖고 싶다는 소유욕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처음 방문한 내 눈에도 바르구르 한센 마을은 “함께 사는 공동체”가 아니라 “함께 죽는 공동묘지”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이 한센인들이 그 마을을 떠나게 된 이유가 아닌가 싶었습니다.
둘째는 거짓과 부정부패가 판을 치는 곳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부에서 파견한 관리자들은 한센인들의 몫을 중간에서 가로채고 있었습니다. 바르구르 집성촌 안으로 들어가면, 입구에 제일 먼저 사무실과 병원(Clinic)이 있었습니다. 그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내부는 밝은 색으로 잘 칠해져 있었습니다. 바닥은 대리석과 타일로 고급스럽게 깔려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병원에는 환자가 없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병원은 그 마을에서 가장 거짓되고, 가장 부패하고, 가장 더러운 곳이라고 했습니다. 의사를 포함해서 모든 직원이 출근 도장만 찍고, 월급만 꼬박꼬박 받아간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현옥철목사님(의사)이 도착했다는 말을 듣고, 많은 한센 환자들이 진료대 앞으로 나왔습니다. 의료선교는 노천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당장 다리를 절단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환자들도 많았습니다. 노천에서 진료를 받을 상태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당장 병원에 입원 해서 치료를 받아야만 하는 환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병원에서는 그런 환자들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해주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분노를 금할 수가 없었습니다. 환부에 소독약이 한 방울 떨어질 때마다 환자들은 참을 수 없는 통증 때문에 온몸을 떨었습니다. 그런데 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은 환자들을 매일 매일 치료해 주고 있다는 의료 일지를 가짜로 작성해서 정부에 보고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한센인들이 하나, 둘 그 마을을 떠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했습니다.
병원 뒤에는 마을 공동 식당이 있었습니다.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식당 문 앞에서 지키고 있던 사람에게 양해를 얻어서 주방 안까지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한 노인과 젊은 사람이 주방에서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노인은 한쪽에서 쌀을 씻어서 찜통에 넣고 있었고, 젊은 친구는 카레 스프에 들어갈 재료들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큰 도마 위에는 작은 토마토가 열 개 정도 있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한 묶음의 야채와 한 주먹 카레 가루, 그리고 생강 열 조각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 날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먹을 점심이었습니다. 다른 반찬은 없었습니다. 밥 위에 카레 국물 한 국자를 부어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 같은 밥을 30년, 40년 동안 먹고 있다면, 그들에게 무료 배식은 지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마을을 떠나는 것 밖에 없었던 또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셋째는 목회자들의 잘못된 리더십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식당 뒤편 숲속에 깨끗하게 건축된 건물 하나가 있었습니다. 지붕 위에는 빨강색 십자가가 세워져 있었습니다. 교회라고 생각했지만, Cornerstone Prayer House란 간판이 걸린 기도의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은 큰 자물쇠로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어보았습니다. 어느 서양 선교사를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기도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건물을 완공하고 많은 사람들이 와서 헌당식 예배를 드렸지만, 그 이후에 그 곳에서 기도 모임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영적 리더들까지 자신들의 이름만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현옥철목사님이 2015년부터 의료선교를 통해서 바르구르 한센인들에게 예수의 사랑과 진실한 섬김과 아낌없는 나눔과 뜨거운 말씀 선포를 통해서 무너진 목회와 시험에 빠진 신앙들을 다시 세우고 있었습니다. 현목사님의 선교를 통해서 깊은 상처들이 치유되고, 한센 가정들이 말씀을 통해서 회복되고, 후원을 통해서 한센인 자녀들이 벅찬 희망을 갖게 되고, 그들이 후에 인도 한센선교를 이끌고 가는 훌륭한 그리스도의 일군들로 성장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New Life 한센 마을
바르구르에서 약 30km 떨어진 New Life 한센 마을에서 두 번째 의료선교가 있었습니다. 그 마을은 바르구르 한센마을과 달리 여러 선교단체가 연합해서 건축한 공동체였습니다. New Life 한센 마을은 바르구르에 있는 막사형 공동 주택과는 달리, 각 가정에게 기증한 독립형 개인 주택이었습니다. 터는 크지 않았지만, 독립된 주택 안에는 한 가정이 살 수 있는 충분한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주택은 기증 받았지만, 그 이후에 먹고 사는 일은 본인들이 해결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한센인들이 읍내로 나가 구걸을 하면서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습니다.
전체 주택 30체 정도는 두 골목에 잘 정돈이 되어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참으로 복잡한 집성촌이었습니다. 똑같은 설계, 똑같은 건평이었지만, 그 주택을 기부했던 단체는 각각 달랐습니다. 각 주택의 대문과 지붕 꼭대기를 보면 그 집을 누가 기증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대문에 힌두교 문양이 있는 집, 성모 마리아 상이 있는 집, 십자가가 있는 집들이었는데, 30체 중에서 십자가가 있는 집은 20체, 성모 마리아가 있는 집은 6체, 힌두교 문양이 있는 집은 4개 정도였습니다. 즉 20체(67%)의 집에 십자가가 있었지만, 그 마을은 십자가 마을이 아니었습니다.
마을 입구 왼쪽에는 큰 힌두교 신전이 있었고, 오른쪽 입구에는 천주교에서 세운 상이 있었고, 그 뒤에는 주민 센타 같은 작은 곳이 있었는데, 지붕 위에는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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